생각해보면 며칠동안 계속 이어지는 우울함을 처음 느낀 건, 2016년 6월 유산을 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굴라쉬를 임신하고 낳을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둘째도 그렇게 무사히 낳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산을 했고 한달간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다행히 약 일년 반 뒤 김치를 임신하고 별 문제 없이 낳았다.
유산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우울한 감정은 처음에는 며칠간 왔다가 불현듯 사라지고, 몇 달이 지나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 주기는 처음에는 6개월 정도였다. 그런데 해가 가면 갈수록 주기가 짧아져서 2018년 겨울부터는 한 두달에 한번씩 찾아왔다.
2020년 4월인 지금은 몇달 전부터 계속 끊임없이 우울한 상태이다.
불쑥 불쑥 집 발코니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많이 아플까 생각을 하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그 사람을 때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불타는 돌이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종종 들고,
한 번은 봅에게 울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1, 2분 정도 숨이 쉬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괴로워하며 살아야 하나 싶어졌다.
아이들도 좋고 남편도 좋지만,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이 세상에 없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봅에게 차분히 앉아서 이야기 했다.
나는 올해 안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아이들도 함께 데려가고 싶다.
너의 인생을 내가 망쳐버린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네가 원하면 당연히 나는 너도 같이 한국으로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너는 한국으로 가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고, 그렇게 결정을 내리더라도 나는 그 결정도 당연히 이해한다.
이 경우에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지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결론을 내야만 한다.
나는 아이들의 고등 교육은 체코에서 시키고 싶기에, 한국 생활은 3년에서 5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네가 이것도 싫다고 한다면, 나는 너와 (법정)싸움을 해서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갈 것이다.
봅에게 최후 통첩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밖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시댁 식구들에게 무시를 받아도,
'너가 너무 예민한 거야.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좀 만나. 체코 사람을 친구로 사귀어봐. 뭐라도 취미 생활을 좀 만들어'
늘 이런 짜증나는 조언들만 해왔던 봅이었다.
내가 선택한 남자이고, 이제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이고, 무엇보다 나는 봅을 사랑한다.
단점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고, 봅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
봅은 조용히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는 4월까지 기다려주겠다고 했고, 이제 그 4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아마 봅은 한국으로 가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90퍼센트 정도 확신한다.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와 말싸움이 필요할 것 같다.
봅은 큰 결정을 할 때는 늘 그랬듯이 시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 뒤에 숨어서 엄마가 일을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결국 내가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싸워야할 대상은 시엄마가 될 것이다.
한 친구는 아이들은 체코에 두고 한국으로 나 혼자 오라고 한다.
한국에서 엄마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면서.
무섭고 겁도 난다.
그래도 남의 나라에서 무시받으면서 사는 것보다 힘든 일이 있을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병신처럼 사는 것보다 서러울까.
한국에 간다고 내 앞에 꽃길만 펼쳐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사실 대단한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한국에는 집도 직업도 없다.
그래도 여기 살면서 스트레스로 암이 걸려 죽거나, 미쳐서 자살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참 신기한 것이 한국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이 곳을 떠날 생각을 하니, 이 곳이 점점 다시 이뻐보인다.
내년 3월에 피는 꽃은 드디어 한국에서.

